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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시] 얼굴 반찬 -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 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태평한 소리 같지만 퇴근 무렵이면 오늘 저녁은 뭐 먹지가 참 큰 고민입니다. 손맛도 없고 부엌에 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제게 매일 뭔가를 만들어 밥상을 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들 녀석은 한창 퇴근 준비하는 제게 습관처럼 ‘엄마, 저녁에 뭐 먹어?’ 전화로 물어보다 꼭 한소리 듣습니다. 부지런히 뭐라도 만드는 와중에, 6시 반이면 또 눈치없이 딸아이가 ‘저녁밥 뭐야?’ 물어보다 ‘주는 대로 먹어라.’는 지청구를 듣습니다. 일주일이면 대여섯 번, 거의 매일 벌어지는 일입니다. 먹는 것에 너무 열성인 듯한 아이들에 어떤 날은 화딱지가 나다가도 한창 크는 중이지 싶고, 이것도 몇 년 안 남았다 생각하면 마음이 누그러지고 이것저것 뭐라도 해먹여야지 너그러운 마음도 솟아납니다. 그래서 부모겠지요.


  코로나19 덕분(?)에 아침 저녁을 늘 같이 먹으며 투닥거리다 보니, 싸우면서 정들고 먹다가 정든다고 식구(食口)로서 서로 더 끈끈해지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이 더 훌쩍 커서 얼굴 반찬이 없는 쓸쓸한 밥상이 되기 전에 더 재미있는 밥상, 웃음 넘치는 밥상, 건강한 밥상 꾹꾹 눌러담아야겠습니다.


  바람이 불고 가을이 깊어갑니다. 그리운 사람을 마음껏 만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는 이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리고 따뜻한 마음 전하는 가을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 | 이형월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