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한사코 입을 열지 않는다
카메라를 피한다
알제리에서 온 젊은 여자 아미나(Amina)
2년 넘게 노숙하고 있지만
이곳을 떠날 의사가 없다
다시 찾아간 늦가을 저녁 철로 변에 그녀가 누워있다
이리 나와 봐
네가 들어와
이불 안은 더럽고 따듯하다
지하철 환풍기 위에 자리를 잡아 열기가 이불을 데운다
히잡 두르기가 싫었어 여자지만 학교에 다니고 싶었고
고향에서 도망쳐 와 불법 체류자로
왜 나는 조금 일찍 출발하지 못했을까
아미나는 자기 의지로 왔다고 하고
딱히 몰아낸 이를 댈 수는 없지만 난 내쫓긴 것 같은데
누구도 빵을 던지지는 않는다
가벼운 지구를 업고
우리는 휘청거리는 행인을 본다
근 열흘 시집 한 권을 들추고들추고 하고 있다. 시 한 편 읽을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쉽게 그 다음 편으로 넘기지 못하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시집을 덮고덮고 하게 된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시인은 세상의 많은 일들에 마음을 둔다. 시인에게 세상은 부당한 일투성이이다. 그것들이 시인은 불편하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그냥 넘겨지지 않는 것이다. 사과를 깎다가 TV를 보다가 개 짖는 소리를 듣다가 숲을 걷다가 도시의 거리를 걷다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시집 전체에 일렁인다.
시인의 마음이 틀리지 않아 내 마음도 불편해진다. 그리고 세상과 사람에 무심한 나가 보여 자꾸 책을 덮게 된다. 그래도 한쪽으로 치우고 싶지는 않다. 책을 들추는 만큼 내 생각도 세상 밖으로 나오는 느낌이다. 불편하지만, 시인에게, 고맙다.
글 | 이형월
'회원글모음 > › 회원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단일기] 채비 (회원통신 2019.02월) (0) | 2019.05.07 |
---|---|
[책속으로] 마음가면 (회원통신 2019.02월) (0) | 2019.05.07 |
[회원의 글] 미국에 대한 생각 (2019.01월) (0) | 2019.05.07 |
[회원탐방] 사업을 한지도, 회원이 된지도 20년 / 심훈 회원 (2019.01월) (0) | 2019.05.07 |
[책속으로] 평균의 종말 (토드로즈/정미나 역) (회원통신 2019.01월) (0) | 2019.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