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우성 (투명사회국)
지난 9월 5일과 6일에 걸쳐 JTV 전주방송은 <전라북도 동부권 시장·군수협의회>가 9월 18일부터 9일 간의 일정으로 추진한 국외연수의 업체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기사를 잇달아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전라북도 동부권 시장·군수협의회>는 해당 연수를 대행할 업체를 선정하면서 공고도 하지 않고 수의계약으로 연수대행사를 선정했다. 보도의 핵심은 해당 프로그램의 전체 소요비용이 9천여만 원에 이르는데 공모절차를 외면하고 전주의 한 여행업체를 선정했다는 것이었으며 이는 비슷한 시기 전주시의회가 2차 공모까지 해가며 업체를 선정한 소요비용 5,700여만 원의 국외연수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덧붙었다.
문제가 된 국외연수를 다녀온 <전라북도 동부권 시장·군수협의회>는 전북 동부 지역 6개 시·군(남원시, 진안군, 무주군, 장수군, 임실군, 순창군)
지자체 간의 상호협력 및 공동사업 등의 추진을 위해 2015년 출범한 지방자치단체 행정협의회다. 지방자치법 152조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는 2개 이상의 지자체에 관련된 사무의 일부를 공동으로 처리하기 위한 관계 단체 간의 행정협의회 구성이 가능하고 필요한 자금은 협의회에 가입한 지자체가 납부하는 부담금을 징수하여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2018년 5월 기준으로 전국에 103개의 행정협의회가 구성되어 있고 이 가운데 2/3에 해당하는 68개가 소속 지자체로부터 부담금을 징수해서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사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전라북도 동부권 시장·군수협의회>는 부담금의 운영과 관련해서부터 규정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가 납부한 부담금은 예산총계주의에 입각해 모두 사무를 담당하고 있는 지자체의 예산에 편입해서 관리해야 하지만 <전라북도 동부권 시장·군수협의회>는 모든 예산을 협의회 명의의 별도 계좌를 통해 관리·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라북도 동부권 시장·군수협의회>의 수입지출 내용은 지방재정관리시스템에서도 조회가 불가능할뿐더러 결산 결과를 공시하고 있지도 않아서 예산이 부적절하게 사용되거나 낭비성 집행이 발생하는 등 문제가 있어도 점검하고 시정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상태다.
<전라북도 동부권 시장·군수협의회>의 예산은 추가부담금을 제외하더라도 지자체가 매년 납부하는 3천만 원씩의 부담금과 도의 출연금 5천만 원을 합해 2억 원이 훌쩍 넘는 규모의 금액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사용되는 이러한 공적 기관의 사업과 활동 내용을 점검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협의회의 예산 관리가 완전히 통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불투명한 국외연수 업체 선정 문제로 협의회의 구성과 활동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진 것이다.
6개 시·군 지자체장이 1년 임기로 번갈아 회장을 맡고 있는 <전라북도 동부권 시장·군수협의회>의 현재 회장은 장수군수다. 얼마 전 ‘황제해외연수’라는 비난을 받으며 계획되어 있던 국외연수를 취소한 바 있는 <섬진강환경행정협의회>의 회장 역시 공교롭게도 장수군이다. <섬진강환경행정협의회>에서 추진했던 국외연수는 연수대행사 공모 과정에서 여행업체에게 현지 방문기관 섭외 등 연수 프로그램의 일정 전체에 대한 기획부터 연수보고서 작성까지 하도록 하는 계약 조건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자 잘못을 인정하고 연수 계획 일체를 취소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소속 단체장 및 실무 담당자들의 해외여행을 다녀올 테니 여행업체에게 그럴듯한 국외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결과보고서까지 작성해달라고 공개적으로 광고를 했던 것이 문제가 되어서 여행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다.
공무원들의 국외연수가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국외연수가 제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와 영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를 통해 성취 가능했었던 훌륭한 결과물들을 폄훼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연수이든 간에 사업의 취지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획이 필요하고 이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해서 진행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섬진강환경행정협의회>의 사례는 공무원들의 국외연수가 공짜로 공무원들 해외여행이나 시켜주는 세금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일반 시민들의 불신을 더욱 강화시킨 셈이다.
<전라북도 동부권 시장·군수협의회> 실무를 맡고 있는 장수군이 9천여만 원에 이르는 국외연수 대행업체 선정에서 공모절차를 생략한 이유가 <섬진강환경행정협의회>의 연수 취소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행정협의회 단위에서 추진하는 비슷한 취지와 목적에 참가대상도 협의회 참여 지자체장 및 담당 공무원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데 바로 앞서의 국외연수는 공모를 통해 업체를 선정하겠다고 해놓고 문제가 생겨 취소되자 다음의 국외연수는 업체 선정 과정 자체를 일체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장수군 담당자의 설명은 이와 다르다. 해당 국외연수의 계획을 검토한 올해 5월의 정기총회에서 2018년 6월에 실시한 국민권익위의 실태조사에서 협의회 부담금을 활용한 국외연수 경비 집행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있었고 이 때문에 여비는 시군별 국제화여비로 지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즉 <섬진강환경행정협의회>에서 불거진 논란과는 상관없이 이미 시군별로 연수 참가자에 대한 여비를 규정에 따라 지급한 것일 뿐, 용역 계약 체결 절차를 무시한 수의계약 체결이라는 지적은 맞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협의회 실무진 또는 회의 참가자들의 자의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 있다. 왜냐하면 같은 시점에 국민권익위가 통보한 ‘지방자치단체 행정협의회 부담금 관리 투명성 제고 방안’(2018년 8월)을 보면 국민권익위가 주요한 문제로 지적한 다른 사항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별도 명의 계좌를 통한 부담금 관리·운용에 대한 대책은 전혀 논의하지도 않았으면서 ‘국외연수 경비는 공무원 여비 지급 기준에 따라 각 참가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결정만 내린 것은 누가 봐도 우선순위와 문제의 경중을 (일부러) 잘못 판단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요점은 총 소요경비 9천여만 원의 ‘국외연수’ 용역 계약을 피하기 위해서 계약서 한 장 필요하지 않은 여비지급을 통한 연수 프로그램 진행이라는 편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관련 연수를 대행할 업체가 전주의 한 여행업체로 결정되었다는 보도 말고는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점검하는 과정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 업체와 체결한 계약서를 제공해달라는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해당 지자체들로부터 “청구 정보 중 '업체와의 계약서'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1조 및 제2조에 따른 '공공기관이 보유 관리하는 정보 또는 직무상 작성, 취득하여 관리하고 있는 문서'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공개정보에 미포함’한다는 답변을 받았을 뿐이다.
시민의 눈높이로 봤을 때, 이탈리아 베니스를 경유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라는 동유럽의 낯선 나라 두 곳을 견학하는 여행프로그램의 일정을 공무원들이 직접 짠 것으로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9일간 2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것도 단체장이 5명이나 포함된 여행객들이 자유배낭여행처럼 일단 가서 부딪혀보자고 떠났을 리도 만무하다. 여비 지급 규정에 따라 지급되는 비용들의 전체 금액에 맞춰 여행사가 방문지의 숙소나 식사 등 전체 일정을 꼼꼼하게 점검한 제안서를 주고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일정을 계획하고 합의한 내용이 ‘계약서’가 아니라면 그 문서의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면서 이렇게 정보공개청구하면 알고 싶은 내용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싫었을까?
장수군 담당자의 발뺌과 비협조 속에 정보공개청구 공개결정문의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논평을 준비하다가 장수군의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는 협의회의 국외연수 진행과 관련된 규정이 미비한 탓에 여러 가지 문제가 지적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국외연수 참가자 개인이 각자 지급받은 여비를 가지고 돈을 모아 버스 대여를 하든, 비싼 밥을 따로 먹으면서 초과 비용을 본인이 부담하든 별도의 제한이 없는 것이 원래 규정”이라면서 “여행사가 기획한 연수 프로그램을 선정해서 진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계약서가 없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납득을 하지 못하겠다는데도 행정의 절차와 제한된 정보를 무기로 ‘반박하지 못하겠으면 그냥 받아들여라’는 권위적인 태도로 느껴졌다.
여전히 우리는 시민이 알고자 하는 공공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행정담당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서 가능한 현실에 처해 있다. 비단 장수군의 담당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위반에 의한 제재를 받는 일만 아니라면 업무 처리의 편의를 위해서 관행을 따르고 세금의 낭비나 불합리한 결정을 방지하기 보다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안위를 우선에 두는 공무원의 태도를 우리는 곳곳에서 시시때때로 발견한다. 이것을 극복해야 우리는 지역자치의 기초적인 토대를 마련하고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를 상정할 수 있다. 행정의 ‘투명성’에 대한 문제는 그래서 제도의 문제를 넘어서 가치와 비전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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