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문병학 회원
삼가, 옷깃을 여미고 선생님 영전에 올립니다.
일제 강점기 칠흑 같았던 1930년대
맑디맑은 이슬을 머금은 풀잎으로 이 땅에 태어나서
저 가팔랐던 1980년대 무지막지한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도끼날에
난도질당해 온몸이 찢겨지고 또 찢겨진 상처투성이 소나무가 되어버린
조성용 선생님께서 이 청한 가을날 먼 길 떠나시려 채비하고 나섰습니다
되돌아보면, 암흑천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의 기쁨도 잠시 다시 전쟁의 포성이 귀를 찢더니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이내 나라는 두 동강으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분단국가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사람노릇하려면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20세기를 가로질러
선생님께서 걸어오신 고난의 길 구미마다 의로운 정신 눈부십니다
자칫, 사람이 살아가면서 공기의 소중함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지만
여기 모인 우리는 선생님께서 남긴 가슴 벅찬 역사를 잊지 않겠습니다.
꼭 기억하겠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날들, 끝없는 고통과 좌절을 다스려서
이룩한 선생님의 빛나는 역사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저 높고 푸른 가을하늘로 올라가셔서 먼저 가 계신
동지 이광웅 시인님과 만나 이승에 남은 우리 얘기도 전해주시고
엄혹했던 저 팔십년대 가만가만 부르셨던 금강선녀도 부르시고
이광웅 선생님의 시 ‘목숨을 걸고’도 다시금 읊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끝없이 닥쳐드는 좌절과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으로 다스려
늘 항상 언제나 민주화운동 동지들에게 큰 그늘로 자리하셨던 선생님
민주화운동 뿐만이 아니라
전북의 역사, 대한민국 민족민주운동의 백두대간 동학농민혁명
그 왜곡되고 축소된 갑오년의 역사를 바로 일으켜 세우기 위한 현장에
늘 함께하셨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셨던 선생님 이제 편히 쉬소서
선생님
이제 이승의 일들은 우리에게 맡기시고 영면하소서
삼가,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선생님 영전에 큰 절 올립니다
2022년 푸르른 가을날, 시인 문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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