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서용운 회원
- ‘아치의 노래, 정태춘’ 영화를 보고 -
정말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영화관에 갔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코로나 전에 ‘기생충’을 본 이후 거의 3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가수 정태춘 선생에 대한 다큐 형식의 영화인데 ‘아치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시사회에 초대를 받아서 정 선생님과 짧은 대화도 나누고 사진도 같이 찍고 악보에 사인도 받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40주년 전주 콘서트에도 갔었고 몇 년 전에는 서울까지 다녀왔으니 요즈음 말로 ‘찐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정태춘 하면 ‘촛불’이나 ‘시인의 마을’ 같은 노래를 많이 아실 것인데,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서해에서’라는 노래가 좋아서 기타 반주에 많이 불렀습니다. 이 노래는 1976년도에 만든 것이니 꽤나 오래되었지요.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데/ 고요히 잡아주는 손 있어 서러움을 더해주나/ 저 사공이 나를 태우고 노 저어 떠나면/ 또 다른 나루에 내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지금도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납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로 하며 생각이 많았던 ‘서해에서’는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영화 이야기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이 영화는 정태춘의 인생과 노래 이야기이지만, 지난 40년 남짓 그분의 살아온 삶과 역사의 기록이고 오늘
우리들의 모습, 그리고 살아갈 날들에 대한 답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감∨가는 바가 컸습니다. 113분짜리 영화 속에서 노래 몇 곡이 나오는데 두 곡만 적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인데 1990년 3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일어난 화재의 참상을 노래한 것입니다.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 나 방 안에서 놀던 5살 혜영이와 3살 영철이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진 비극을 노래로 만든 것이지요.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 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 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하고 우리는 켤 줄도 몰라/ 우린 종일 누워 천정만 바라보다 /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가사의 처음 부분을 적어보았습니다만, 무려 7분이 되는 노래입니다. 대중가요가 보통 3분 남짓이니까 거의 두 배로 긴 것이지요.
영화 속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그때 생각에 절로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의 ‘기생충’이 삼십몇 년 전에도 있었고 또 삼십몇 년 후에도 여전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노래 제목이 주는 메시지도 무겁게 와닿았습니다. ‘우리들의 죽음’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가난한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지금 여기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비극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노래는 ‘5.18’이라는 곡인데 1995년 곡이지요. 5.18이 언제인데 아직도 끝나지 않는 은폐와 왜곡의 어두운 역사 앞에 횃불 하나 밝히듯 작정하고 만든 곡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 영화 시사회에도 ‘5.18’의 피아노, 키타 피스를 한 부씩 나눠주어서 사인까지 받아서 가져왔습니다. 영화 개봉일도 5.18이니 그만큼 작정했다는 것이겠지요.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누이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5.18로 훈장을 받은 사람들 중에 반납한 사람들도 없는데 잊혀가는 것에 대한 분노의 외침으로 들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고, 외쳐야 하고, 따라 불러야 할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18’이라는 곡에 저 혼자 제목을 따로 붙여보았습니다. ‘5.18 – 우리들의 죽음’ 정 선생의 많은 노래들은 시대의 아픔들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고 함께하는 삶에서 나온다는 것 이미 많이 알고 계시겠지요. 몇 곡만 적어봅니다. ‘서울의 달’(달동네 사람들 이야기), ‘들 가운데서’(미군에게 빼앗긴 평택 대추리 사람들 이야기), 아! 대한민국(하늘과 땅만큼 차이 나고 전혀 다르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
113분 동안 영화는 정태춘박은옥의 노래와 그 배경, 삶을 오롯이 보여주었습니다. 영화관의 음향이 얼마나 좋은지 마치 콘서트 현장에 앉아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시사회라고 하지만 공짜로 영화를 본 것 같아서 관계자분에게 정선생님 주소를 좀 보내주시면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드리겠다고 했습니다만, 마음만 전해드린다고 기어이 사양을 하시더군요. 선물은 전해드리지 못했어도 다시 한번 개봉관에서 표를 구입해서 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도리일 것 같아서요. 정태춘박은옥 노래 좋아하시거나 괜찮다 싶으면 콘서트 가는 셈 치고 한번 보시면 어떠실까 합니다.
금년 장마는 언제부터 시작될지 모르겠습니다. 꼭 장마가 아니더라도 비오는 날 이 노래 한 번씩 들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92년 장마, 종로에서’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되겠지요.
* 서용운 회원은 전북대학교와 한신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주 임마누엘 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metase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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