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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대회입상작-대학부] "말이 통하는 사회"

"세상을 바꾸는 시민의 힘" 상 | 윤정아



1.

  ‘쓸데없는 데 관심 갖지 말고 공부나 해.’ 어릴 때부터 유난히 정치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내가 자주 들은 말이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취업이란 벽 앞에서 내가 뱉는 정치 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소리 정도로 여겨졌다. 나는 민주시민으로서 자연스럽게 권리를 갖고 태어났지만 몇몇 사람들은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의 권리를 인정해주지는 않았다. 누구나 말을 할 수 있지만 모두가 다 들어주는 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가 점점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배운 민주사회는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요즘 사회 분위기를 보면 은연중에 불편한 통합보다는 상대적으로 편한 분열을 선택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나와 의견이 다른 이와 대화를 나누고 견문을 넓히는 쪽 보다는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쪽을 선택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편한 길을 선택하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때로는 적당한 불편을 감수하는 일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나는 등굣길 버스에서 종종 주요 신문사의 사설을 읽곤 하는데 나와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신문사의 사설은 상대적으로 쉽게 술술 읽히는 반면, 나와 반대의 성향을 띤 신문사의 사설은 읽는 내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반대의 성향을 띤 신문사의 사설을 읽으며 공감하는 내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던 일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며 공감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단순히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의견에 공감하기를 거부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날 이후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역감정, 차별 등을 지양하고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고 믿었는데, 실제의 나는 내 자신이 정의내린 한계에 가두고 은연중에 분열을 조장했다. 진영을 나누고 내 생각만을 고집했다. 내 생각이 곧 정답이라고 믿고 나와 다른 진영의 사람들과의 소통을 꺼리고 있었다. 단순히 불편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나는 그 날부터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먼저, 내 안에 자리 잡은 이분법적 사고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진보, 보수라는 프레임을 지우고 온전히 그 자체만을 보려했다. 예를 들면, 신문 기사나 사설을 읽을 때 이 기사가 진보신문의 기사라는 생각을 최대한 지우고 사설을 작성한 글쓴이 개인의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 

  그 다음으로 조금 귀찮더라도 사실 확인의 과정을 반드시 거쳤다. 어떤 이의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주장을 펼치게 된 배경의 사건의 진실이 어떤 것인지, 혹시 그 주장에 거짓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했다. 왜곡된 진실을 사실로 착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리고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 늘 읽던 신문사 사설 외에 주요 신문사 사설을 전부 읽었다. 한 논제를 두고도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주장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비판의 대상이 달라지며 각자의 우선순위에 따라 사건의 중요도도 달라진다. 내 관점과 가치관만 고집하면 절대 수긍할 수 없었을 말들도 고집을 내려놓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들으니 이해가 됐다. 이러한 과정들을 겪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이런 사소한 노력에도 예상보다 큰 불편함이 따랐다. 고작 내 스스로를 바꾸는 일에도 꽤 부단한 노력들이 필요했고, 그 과정들이 조금 고통스러웠다. ‘내가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걸 누가 알아줄까?’, ‘나 하나 달라진다고 뭐가 바뀌기나 할까?’, ‘편하게 살면 그만 아닌가?’ 참 많은 유혹들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서서히 느껴지는 변화 때문이었다. 주변인들과의 대화에서부터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나는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라서 조별과제를 진행할 때, 나와 다른 의견이 나타나면 반박할 거리부터 찾곤 했는데, 그랬던 내가 온전히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내 의견이 공동을 위한 최선책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같이 조별과제를 진행했던 친구가 이번처럼 마음 상하는 일 없이 과제를 끝낸 게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뿌듯했었다. 그 때, 나부터 바뀌면 적어도 내 주변만큼은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



3.

  내가 꿈꾸는 민주사회는 제약 없는 대화가 오고갈 수 있는 사회다. 사람들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할 때 차별 없는 진정한 사회통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색깔론, 흑백논리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 등이 근절되어야 한다. 

  세상엔 수많은 생각이 존재한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기준과 가치관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다양한 생각이 존재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 생각이 정답인 것처럼 여기고, 상대방의 생각을 오답 혹은 오류로 결론 내린다. 그 순간, 혼란과 분열이 찾아온다.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계몽시켜야 하는 대상이나 고쳐야하는 오류로 여기는 순간 지독한 싸움이 시작된다.

  항상 대화가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향기 좋은 차 한 잔을 서로 건네면서 웃으며 하는 대화만이 대화는 아니다. 때로는 고성이 오갈 수 있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의견이 대립할 수도 있다. 다만, 내가 말하는 대화는 언제나 존중이 깔려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와 상대방의 입장 차이 속에 숨은 절충안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투표권이 하나씩 주어지는 것처럼 모든 대화 앞에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한다. 대화의 장에서 성별, 나이, 재산, 지위 등이 특혜로 작용해선 안 된다. 어쩌면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불가능이라는 프레임이 진짜 불가능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불가능하다고 믿으면 정말로 불가능해진다. 반대로 기적은 언제나 불가능에 도전했을 때 생겼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어떤 분의 인터뷰 내용이 매우 인상 깊게 남았다. 그 분은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민주화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 불현 듯 2016년 촛불집회가 떠올랐다. 매서운 한파를 뚫고 수많은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나도 친구와 광화문 광장을 찾았는데, 추위 때문에 발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을 더 찾아갔었다. 이 정권이 정말 물러날까? 탄핵이 정말 가능할까? 일말의 확신도 없었지만 나는 결국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그냥 촛불을 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랬다. 그리고 결국 행동하는 실천은 불확실을 이기고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내가 그 때 겪은 촛불집회야 말로 소통의 장이었다. 그 곳에는 나이도 성별도 지위도 없었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었고 혼란을 방지하고 질서를 지키기 위한 규칙들이 대화를 통해 만들어졌다. 70대와 10대가 공감을 나눌 수 있었고, 진보나 보수를 따지지 않고 함께 촛불을 들었다. 그저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공통된 뜻을 확인하고 마음을 함께 모았다. 촛불집회가 진행될수록 불가능은 가능으로 변했고, 폭력이나 다툼 없이 촛불이라는 평화로운 방법으로도 국가에게 국민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결국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화의 방식은 다양하다. 꼭 말이 오가야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말보다 침묵의 힘이 강할 수 있고, 누군가가 걷는 행보가 그 사람이 전하는 뜻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던 것처럼. 

  그리고 진정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우리는 항상 적당한 의심을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 왜곡된 진실에 선동되지 않기 위해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특히 요즘처럼 가짜뉴스가 성행하는 시기에 그저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는 지양해야한다. 가짜뉴스는 분열을 조장하기 쉽다. 조금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스스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타인의 의견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진정한 주체성을 가지려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내 주체적인 의지와 생각이 바로 서야 진짜 대화가 가능하다.

  나는 민주주의는 영원히 완성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인류에게 주어진 영원한 숙제 같다. 완성되었다고 안도하는 순간 문제가 터진다. 무인도에 떨어져 혼자 살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영원히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내 권리가 존중받기 위해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야하고 그건 어느 정도의 불편을 동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불편을 멀리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오히려 편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고집불통이었던 내가 생각의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이후로 마음이 편해졌던 것처럼 말이다.

 


4.

  우리에게는 늘 사회통합이라는 숙제가 주어져왔다. 생각을 하나로 통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화합을 이루고 차이를 인정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고질병 같은 지역감정, 성차별, 세대차이 등 전부 대화의 부재로부터 나타난 문제들이다. 이 문제들의 해결책은 ‘소통’에 있다. 북한 사람들 머리에는 뿔이 나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의 가르침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 우리는 북한과 대화를 통해 알았다. 이처럼 오해와 편견 등을 가장 쉽게 깨버릴 수 있는 방법은 ‘대화’라는 것을 우리는 숱한 역사의 반복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진짜 소통을 위해서 우리는 크고 작은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며, 불가능이라는 프레임이 가둬 이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아야한다. 진정한 소통이 사회의 통합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말이 통하는 세상이 더 나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세상이라고 믿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여성과 남성이, 노인과 아이가, 고용인과 비고용인이 한 자리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소통이 가진 힘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온전히 ‘나’라는 한 개인의 생각이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내 생각과 다른 그 어떤 견해를 펼쳐도 나는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