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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대회입상작-대학부] "작은 실험"

"여럿이 함께" 상 | 이재윤




  서부시장에 위치한 인문학 공동체인 인간무늬연마소로부터 처음 기본소득 실험 제안을 받았을 때, 기본소득이 어떤 건지 아는 게 없었다. 인간무늬연마소 측은 1)8월부터 세 달간 기본소득 20만원씩을 받아 사용할 것, 2)기본소득 세미나에 참여할 것, 3)실험 말미에 보고서를 작성해줄 것을 제안했다. 돈을 준다는 파격적인 제안에 덜컥 수락해버렸다. 다큐 <문화적 충동으로서의 기본소득>을 통해서야 기본소득이 소득 불평등과 가난 등 자본주의적 한계를 돌파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본소득이란 모든 사회의 구성원에게 무조건적이고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이며, 시민이 사회에 대해 갖는 정당한 분배정의이자 권리라고. 70년대 이탈리아의 학생 운동[각주:1]에서처럼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2016년에는 스위스 국민 투표에 붙여졌으며, 기본소득네트워크가 한국에도 지부를 틀고, 녹색당과 LAB2050을 중심으로 선전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기본소득이 사람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자유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실험과 동시에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며 의견을 물었다.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입문서를 읽고 토론했다. 이 실험을 통해 얻은 것 중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점은 노동에 대한 나의 인식 변화와 의제 결정권에 대한 갈망이었다. 



노동의 현실


  임금 노동을 하지 않고 제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은 특정한 운이 작용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모든 게 돈을 통해 운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기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그래서 피할 수 없다면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서 나아가야 한다. <오늘, 내일, 모레정도의 삶>의 저자인 임상철 빅이슈 판매노동자는 젊었을 때부터 홈리스 생활을 했지만 잡지를 팔면서도 그림을 그려 엽서에 붙였다. 거리의 철학자 에릭 호퍼는 일 할 때는 열성을 다해 한 후, 일이 끝난 뒤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했다. 8월 중순에 만났던 송하 화가의 경우도 비슷했다. 교사 일을 하는 중에도 미술 대학원을 성실히 마쳤고, 육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모두 그녀 스스로 떳떳하게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보통 이런 경우에, 우리는 그들에게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자신의 조건을 짊어져야만 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특정한 일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게 두 마리 토끼를 잡지 못한다.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을 보면 인간의 노동 그 자체는 실상 인간의 건강과 존엄성을 박탈해왔으며, 시간과 활력을 빼앗고 꿈과 미래에 눈멀게 했다. 90년대 후반 부국을 위한 희생이 강조되던 사회에서, 노동윤리란 시대적 프로파간다에 쉽게 이용되는 경향을 보였다. 교육은 직무 교육, 애국헌신 등 특정한 부문으로 경직되었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비대칭적인 구조의 결과 소수의 자본가의 손에 들어갔다. 국제통화기금의 원조 이전 경제 호황을 누릴 때까지만 해도, 기업은 직원에 대한 상당히 높은 노동소득분배율[각주:2]을 보였으나, IMF 이후 외국 자본이 유입되고 그만큼 외국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들의 몫은 줄어갔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 대부분의 노동이 ‘착취’ 다름 아닌 상태에 놓여 있고, 노동의 가치는 기술 혁신, 경제 발전 등에 한참 밀려 하찮은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일하라, 는 말은 사회의 부조리에 동참하거나 ‘닥치고 헌신하라’는 조언과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거다.



납세저항의 기원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은 세금이었다. 우리는 기본소득은 물론 현재 집행되고 있는 선별적 복지에 대해서도 ‘황금 같은 자신의 세금’이 그들을 돕는 데 쓰인다는 것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중산층의 납세 저항이 선별적 복지 예산을 일정 수준 이상 확대시키는 걸 막고 있었다. 세금이 당사자가 아닌 ‘그들’을 돕는 데 쓰인다는 인식. 게다가 최근 우리는 세금이 과도하게 남용되는 면면을 봐왔기 때문에 세금운용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깔려있기도 하다. 또 하나의 원인은 ‘그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었다. 공부 못하고, 가난한 자들은 ‘그들이 원체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편견. 나는 이 편견을 확인하기위해 주변에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학창 시절에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는 동급생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한 두 명 정도가 학교 뒤편에 마련된 테니스장에서 오전일과 중에도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수업을 받지 않아도 되는 열외자라고, 그리고 나머지 예체능 반으로 편성되어 야자를 면제받는 이들을 낙오자로 은연중에 생각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에서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를 품으며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장학금의 기준이 공부 성적순이라는 것에, 공부 못하고 가난하면 게으른 것이고, 게으른 자에게 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인식의 ‘불공정함’은 느낄 수 없었다. 예컨대 노동의 강도가 같아도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이 다르고, 하물며 사회적인 대우마저 차별로 기운 것에 대해 그것의 ‘불공정함’을 느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러한 대우를 받는 것은 마땅하다는 인식. 정치적 수혜를 받은 경험 없이 각자도생으로 살아왔던 우리들이, 특히 어렵사리 그 관문을 통과한 무리들이 ‘게으른 자’에게 내뿜는 따가운 시선은 ‘공정함’에 대한 요구란 명분하에 대세처럼 자행되고 있다. 최근 조국 논란을 보면서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들끓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외려 이 논란은 더 이상 가난과 실패는 그들이 게을러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려주고 있는데 말이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처럼 “능력이나 재능 자체는 시간과 문화자본이 투여된 산물”이라면 “초기값의 차이가 너무 큰 결과값의 차이로 이어지는 공동체”[각주:3]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재해있는데도 정치에 대한 환멸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좋지 않은 평판은 거대한 양당제 속에서 진영논리와 파 싸움으로 희생된 민생의 역사에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권한 축소로부터 나오는 지도 모른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극적인 후속 조치로서 사람들은 점차 더욱 흠결 없고 도덕적으로 완전한 자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진입 장벽 자체를 높이 치면, 그들의 업무 집행의 과중 권한에서 오는 정보의 불투명성 혹은 비대칭성을 완화시키진 못하더라도 그것에서 오는 우리 속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다. ‘민심’이란 단어를 보자. 그대로 풀이해보면 민중(국민)의 마음이고, 따라서 입법자와 행정 수뇌부들이 민중들의 ‘마음’을 읽어내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그런데 마음이 가지는 형이상학적인 특징으로 인해 사실상 민중이 그것을 제대로 된 의제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궁예처럼 독심술을 쓰지 않고서야 그들은 의중을 알 길이 없다. 우리는 ‘의제 설정권’까지 정치의 영역으로 묶어서 그들에게 맡기고 거기다 일종의 암묵적 자율권을 양도하는 바람에, 정치인들에게 맡겨진 역할이 가중되고, 이제는 민심 판단 척도까지 일부 고위직 의원에게 빼앗기고 있다. 우리의 지나친 양도가 그들을 자주 국민과 민심을 들먹이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남용하게 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스스로 판단 기준을 기르는 과정에서, 나는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고, 그들을 설득하며, 또 나 자신을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신중히 나의 결단의 동기들을 파악하고 그것이 어디로부터 나왔는지, 단지 얄팍한 직업적, 문화적 편견이나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오진 않았는지 따져 물어야 했다. 작은 내 안의 충동이 온전한 확신이 될 때까지 탐구는 계속되어야 했다. 우리네 삶은 어떠한 모양을 하고 있는지. 그게 바람직한지. 



기본소득 실험 그 이후


  연구자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불평등 논의에 공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기본소득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낙관적 전망까지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기본소득 기본서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불만도 위와 같은 비약이었다. 기본소득이라는 대안을 소개하는 시기적인 상황을 감안하면 그것만으로 가치 있는 일이지만, 본격적으로 경제 문제를 들여다볼 때 우리는 아직 담론이 형성되지 못했다.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범국민적으로 선행해야 할 논의들이 많다. 대체적으로 정부의 역할은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요구된다. 보수라고 통칭되는 학자들에 의하면 ‘부자증세’ 운운하는 속칭 ‘좌파’ 논객들의 주장에 회의를 표하면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권력의 남용이나 절차적 불공정’을 바로잡는 일이지 분배적 정의감(분배 정의)나 부자들에 대한 분노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장과 자본주의 자체를 시민들의 적으로 몰면서, 사회 발전을 저해하고 불간섭과 자유의 영역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물론 내겐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신념도 고리타분해 보인다. 자본주의는 가장 민주적인 제도인가? 개인의 자유와 공정한 경쟁이 그리 사이좋은 낱말일 수 있을까? 좌우 진영의 입장을 두루 살펴보면서 드는 첫 번째 생각은, 경제만큼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문제가 없고, 각자 자신의 이론과 진리를 설파하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프나 도표 역시 표본을 설정하고 무엇을 표본에 반영하고 안 하고의 문제 등 통계를 내는 것부터 첨예한 논쟁이 오간다는 사실, 사회를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지표와 통계의 부실, 그로 인한 결과이지만 진영 싸움이 극명하다는 사실이다. 


  기본소득을 받은 처음 단계에서는 이 돈을 어떻게 가치 있게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런저런 계획을 작성해보기도 하고, 가계부를 적어도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습관대로 돈을 물 흐르듯이 소비하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위해 1년간의 수입지출 현황을 분석하다가 막상 놀란 것은, 기본소득을 받은 후 늘어난 소득만큼 소비가 늘어났으리라는 예상이 보란 듯이 빗나간 점이었다. 기본소득 자체가 내게 창의적 활동량을 크게 증가시켰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다만 그 동안 비교적 안정적인 소비생활을 유지했다. 고민의 범위가 분명해지고 에너지 분산이 줄어들었다. 가난 구제대책을 넘어 사회적 효용을 증명하려면 일반 소시민이나 중산층들의 행동 경향을 분석해봐야 하는데, 사실 이 점은 기본소득이 시행되지 않고서는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건 20만원어치의 자유였다. 근대 초기 <소유권이란 구체화된 자유>란 캐치프레이즈처럼. 지금 캠퍼스 밖에서 진행되는 작은 실험들이 있다. 현재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공동체들이 있다. 이제는 자본주의를 숙의할 차례다. 나는 이들과 함께 내가 바라는 세상에 대한 사고실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1. 자신들이 공부하는 것 역시 사회라는 공장에서의 ‘노동’으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결국 무상대학등록금을 실현했다 [본문으로]
  2. 노동소득분배율이란 생산 활동으로 발생한 소득 가운데 자본을 제외한 노동에 배분되는 몫을 가리킨다. 참고자료: 한겨레, ‘한국 노동소등분배율 20년만에 10%p↓, "우리나라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66.12%에서 2016년 56.24%로 9.88%포인트나 떨어졌다......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5~6년간 급격히 하락했는데, 대량 해고, 임금 삭감, 기업의 구조조정과 파산 등이 하락세를 가속화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3. 한겨례, [박권일, 다이내믹 도넛] 영원 회귀하는 정유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