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료실/글쓰기대회입상작

[글쓰기대회입상작-고등부] "나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민의 힘" 상 | 이찬희




  “이제 엄마를 보내줘야 할 것 같아.” 아빠가 말했다. 아빠를 중심에 두고서 언니와 나는 양옆에 서있었다. 서로의 손을 잡고, 따듯한 손을 붙잡고. 진통제에 취한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전에는 “엄마” 하고 부르면 작게라도 대답이 들려왔는데 그날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일주일동안 2인실에서 4명의 가족이 지내다가, 우리의 개학날이 다가와서 집으로 향했다. 잠이 쉽게 오지 않아서 거실로 나와 언니와 함께 잠을 청했는데, 그날 새벽에 엄마가 떠나가 버렸다. 


  엄마의 빈자리.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던 나. 차가운 분위기. 눈을 감고 있는 엄마가 무서웠던 나. 평생 지워지지 않을 그리움. 영원히 사랑할 나의 어머니. 어머니.


  이별을 대하는 방법을 몰라서, 장례식장에서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참고 또 참아낸 눈물은 외로움이 되고 울음을 참느라 찢어질 것 같던 나의 목구멍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슬픔에 대한 기억을 남겼다. 그 기억을 잊지 않으려 글을 썼는데 어느새 글이 나의 인생이 되어버렸다. 장래희망이 무엇이냐 물음을 받으면 작가가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었다. 작가는 진부했고, 글 쓰는 사람이 딱 좋았다.


  사람은 우울을 경험할 때 성장하는 것 같다고, 5년이 지난 지금 깨달은 바가 있다. 우울하면 내가 보이고, 가족이 보이고, 주변이 보인다. 나를 마주하고서 한동안 많이 울었다. 걷고 있다가도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나고, 음악을 듣다가도 무작정 그리운 마음에 또 눈물을 흘렸다. 가족을 바라봤을 때는 화가 났지만 점차 후회스러운 마음으로 변했다. 내가 피해자라고 속으로 우겨댔다. 친구가 인생인 언니를 보며, 명예가 인생인 아빠를 보며. 지금 와서 보면 오히려 내가 가해자인데 왜 피해자라고 우겨대기 바빴을까. 방금 나의 회고처럼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었던 건 우울 덕분이라고 믿는다. 나를 이해하고, 가족을 이해한 뒤 주변을 돌아봤을 때는 이미 좋은 사람이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덕분에 표현에 서툴던 내가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 되고, 화가 많던 내가 이제 해탈의 경지에 서서 목탁을 두드리고 있다. 이제 세상은 정말 별 거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고민을 해봤는데 역시 내 곁에 엄마가 존재했으면 좋겠다. 자세히 말해보자면 엄마와 포옹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너무 슬퍼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을 땐 어딘가에 살아있을 엄마의 모습을 그린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건 심장이 터져버리는 일 같다. 한 번만이라도 좋다. 정말 한 번 뿐이라도 좋으니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다. 


  이별은 아팠지만 그 아픔이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공부를 해야 그나마 돈을 편하게 벌 수 있고, 많이 벌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지 않다. 공부 자체는 좋은 행동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공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아빠와 성적에 대한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아빠도 나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신경 쓰는 사람도 없는데 너 스스로 공부 하는 게 너무 신기해.” 중학교 때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내가 신기했다. 공부를 해서 뭐라도 이루면 나는 웃고 있을까? 애매한 점수, 등수를 가지고서 나의 행복을 찾는 일은 오히려 불행에 다가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한 장래희망이 글 쓰는 사람. 이 5글자를 떠올리기만 해도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행복한 꿈이란 건 이런 삶이지. 행복한 삶이란 건 이런 꿈이지. 


  학원을 다 그만두고 흔히 말하는 수포자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그래도 내 선택에 후회는 절대 없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한 가지를 놓아줬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사람에게 지식이 많으면 좋겠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 대해 고민하면서까지 얻고 싶은 지식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참 멋있다. 다른 친구들도 자신을 멋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 자신 그 자체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면 좋겠다. 사랑스러운 것들이 너무도 많은데, 지금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넘쳐나는데, 연필을 붙잡아야만 한다는 것은 참 고단한 일이다. 년도가 늘면 늘수록 사랑해야 할 것들을 잊게 될 것이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났지. 성공하려고 태어났나.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면 행복해질 가능성이 크다. 순수함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다. 어린 아이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다. 엄마 따라 교회를 다닐 때 나의 기도에 늘 있던 소망이 무엇이었냐면 ‘엄마가 얼른 낫게 해주세요.’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였다. 비록 엄마가 떠난 뒤로는 나 자신을 믿고 있지만 꽤 의미가 있던 소망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행복하기만 했다면 불행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과 동시에 불행이 있어서 인간이 성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돈을 바라보며 살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사랑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늘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그 길을 가야 한다. 세상 사람들 다 알듯이 세상에 답은 없기 때문이다. 


  요즘 나 같은 사람들을 자신의 세계에 빠진 아이들이라고 하는데, 좋은 말 같다. 나만의 세계가 있다는 것. 진정으로 행복한 일이 아닌가. 이제 돈을 벌어서 행복해지는 게 다가 아닌 사회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행복을 찾으러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정보와 지식이 널려있고,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분명히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행복한 세상은 아니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부터가 그 세상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글이 행복인 나처럼, 춤을 추는 게 행복인 나의 친구처럼, 무용이 행복인 나의 친구처럼. 꼭 공부로 행복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들을 서로에게 해줬으면 좋겠다. 서로 토닥여주고 응원해주고, 울고 싶을 때 같이 울고 웃고. 그게 인간관계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인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꼬이고 꼬인 글이 됐지만 이런 꿈도 있겠구나 하고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꿈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 내가 현실적으로 꿈꾸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꿈을 꾸면서 많이 다치는 것 같다. 꿈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찾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싶다. 글 쓰는 사람은 단지 장래희망일 뿐이고 진정한 꿈은 엄마를 다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이 들고 어쩌면 이루지 못할까봐 슬프다. 그러니 천천히 이루어도 된다고 세상이 직접 말해주면 좋겠다. 장래희망보다 사랑스러운 것들을 찾아서 오늘도 떠나야지. 행복이 다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하며 검소하게 잘 살아 봐야지. 어딘가에 있을 엄마를 그리며 웃으며 살아야겠다. 모두가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란다. 당신들의 세상이 더 빛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