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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대회입상작-고등부] "내가 바라는 입시제도"

"여럿이 함께" 상 | 조운주 




  나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15살 수험생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갈 수도 있었지만, 조금 더 자유로운 방식으로 공부하고 싶어서 홈스쿨링을 선택했다. 하지만 학력 인증은 내가 앞으로 공부를 해나가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해 바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았고, 검정고시를 보고 나니 공부하던 것에 이어 대학 입시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지금은 수능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나라 대부분의 청소년이 고민하는 대학 입시라는 문제가 나에게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나를 비롯한 청소년들의 최대 고민거리인 입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해보려고 한다.


  수능 공부를 하면서 시험 범위에 들어있지 않지만, 더 깊이 배우고 싶은 것이 늘어났고, 연계된 다른 과목들도 배우고 싶어졌다. 그러다보니 수능에서 보는 과목들만이 과연 대학에 진학하는데 필요한 기준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수능 과목들은 다방면의 지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학습 역량을 보여주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재능은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그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수시 지원을 위해 논술 준비를 하게 되면서 수시가 다양한 방면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을 보면 수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고, 내년부터는 수시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말도 들린다. 

  수시를 불공정한 전형이라고 말할 때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수시는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아도 특정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수시의 본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사람의 자질이 어떤 기준에 의해 판단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판단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한가지 획일적인 기준만을 가지고는 다양한 방면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자질을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능에서 보는 과목의 점수만이 개인의 능력치를 알려준다는 관점은 편협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수시는 오히려 정시의 획일성을 보완해주는 제도이다. 

  두 번째 근거는 수시 전형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고, 수시 지도를 받으려면 사교육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그만한 정보력과 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득권층만이 수시 합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을 근거로 하여 수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그러니까 못 가진 사람들은 수시로 대학을 못 가는 거야.’라고 했는데, 나는 그 사람이 기득권층에 비하여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제도 자체의 의의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시는 입시 제도에서 그나마 다양성을 확보해주는 역할인데 이것을 없애면 오히려 더 약자에게 불리한 제도가 될 것이다. 수시 지도를 받는데 사교육비가 많이 든다면 그것은 전형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이 민주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시를 강화해도 시험을 잘 보려면 결국 고급정보와 그것을 얻기 위한 재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조삼모사 아닌가.


  수시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기득권층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전형이기 때문에 수시를 반대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은 놓지 않으려고 한다. 이러한 모순은 농어촌 특별전형의 예를 살펴보면 더욱 선명히 알 수 있다.

  농어촌 특별전형은 초중고를 농어촌에서 졸업한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전형을 말한다. 이 전형의 목적은 농어촌 학생들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지만 해당 지역 밖의 학생들 중에는 농어촌 지역 학생들과 똑같은 성적을 받았을 때 자신이 더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것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농어촌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적고 입시에 관한 정보도 구하기 힘들다. 나는 초등학교를 농촌에서 나왔는데, 학교를 다닐 때 실제로 선배들이 대학 진학 문제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각자가 가고 싶은 대학이나 배우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범위가 턱없이 적었다. 이렇게 강남에 사는 학생들에 비해 다른 지역 학생들이 불리한 환경에 있는 것처럼 농어촌 지역 학생들도 다른 지역에 사는 것보다 불리한 환경에 놓여있다. 그런데 수시는 상위층 학생들보다 불리한 조건에 놓여있지만, 똑같이 판단한다고 하여 불공평하다고 하고 농어촌 특별전형에 대해서는 똑같은 기준에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불공정하다고 한다면 이것은 교육 제도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지 못한 특권은 뺏으려 들고, 자신이 가진 특권은 내어주지 않으려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입시제도를 비판하거나, 옹호하거나, 변경할 때 교육의 민주화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민주화라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가장 공평하게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인가이다. 가장 공평하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른 모든 전형을 없애고 수능 점수만을 반영해 대학에 들어간다면 절대적인 평등은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상대적인 평등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이것은 문제 풀이 공부는 못하지만,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완성도 높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 풍부한 지식과 투철한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제도권 교육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창의력이 있는 사람, 리더십과 통솔력이 있는 사람,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 비판의식이 뛰어난 사람, 정의감이 높고, 옳은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 자신이 배우는 것보다 남을 가르치는 재주가 더 뛰어난 사람의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양한 능력을 기준으로 한 평가 제도가 있어야 하는 이유이고, 실제로 대학에서 수시를 비롯한 여러 전형을 실행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수시를 줄이기는커녕 여러 방면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한편, 지금 소수의 기득권층이 누리고 있는 교육 관련 혜택은 우리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혜택이란 비리를 저질러서 부정 입학을 하는 것이 아닌,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개개인에게 적합한 입시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이러한 것이 다수가 가지지 못한 특권이기 때문에 아무도 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결국 획일적이고 불평등한 교육관과 제도로 이어진다. 모두가 누릴 수 없는 특권이니까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양한 환경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보편화하는 것이 교육의 민주화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방법일 것이다. 

  나는 이것이 실현된 세상에서 수험생이 되고 싶다.